우크라이나 오데사에서의 여행기

 




The streets of Odessa. In the dying heat of summer, the air was dry yet heavy with the scent of the city.
오데사의 거리. 더운 막바지의 여름, 건조했지만 도시 곳곳은 심어진 나무들과 풀 냄새로 가득했습니다.


"오데사에 갈거니? 빨리 이 버스에 탑승해, 우린 곧 출발한다!"

키시너우의 버스정류장에서 터키로 향하는 버스를 찾기 위해 그곳 주변을 배회하던 중에 '오데사'라고 적혀있는 버스를 발견했습니다.

버스 기사는 내가 외국인으로서 현재는 그곳에 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지만 어쩌면 그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저에게 농담을 건네었을지도 모르죠.

어쨋든 그로 인해 오래 전 오데사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천진난만한 말투가 떠올랐습니다.


작년에 방문했던 몰도바는 가을의 나라였습니다.


도시의 외곽 너머 펼쳐진 머나먼 평원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낡은 도로에 잠들어있던 낙엽의 파편들을 깨워 일으키고 곳곳의 공터에 걸려있는 빨래들로 하여금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게 만들고 있었죠.


키시나우는 몰도바의 수도였지만 그곳의 기차역은 그곳의 낙엽처럼 붉고 산화되어있었습니다. 

멈춰선 기차 위를 가로지르는 낡은 다리 위로 아낙네들이 걸어놓은 옷들이 깃발처럼 나부끼고 있었고

다 부서져가는 작은 등받이 없는 의자에 기댄 늙은 여인은 지나가는 행인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여인이 그 옷을 팔기 위해 그곳에 걸어놓았을테죠.


그곳에서도 저는 끝없는 평야에 걸쳐진 태양 너머에 있는 오데사로 향하는 열차를 보았습니다.

비록 저는 그곳에 갈 수 없었지만, 오래 전 그곳에서 맡았던 냄새를 몰도바의 티라스폴과 키시너우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a picture on trambai
"당신 한국인이지? 딱 봐도 알 수 있어." 트램 좌석에 앉아있던 한 여인이 저를 보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아시아인들 중에서도 한국인의 분위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몇년 전 여행이었습니다. 아마 10년정도까진 안 되었을겁니다.

그곳의 사람들은 저에게 경계 어린 시선을 보이기도 했지만, 저는 그것이 우크라이나 사람들 특유의 시니컬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한국사람들처럼 자주 미소짓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내다 보면 그 사람들의 마음은 그곳 오데사의 날씨만큼이나 따뜻했습니다.

정보에 따르면 아름다운 흑해의 해변 덕분에 우크라이나 내전 이전까지는 러시아인 관광객들이 1년에 수백만명 단위로 방문하던 도시였다고 합니다.


beach on Odessa
흑해의 바람은 여름에는 매우 따뜻하고, 해변으로 향하는 길은 눈부셨습니다. 


해변에는 결혼식을 올리는 커플이 춤을 추고 있었고 사람들은 흑해의 파도를 맞으며 그곳에서 한가로운 여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왜 티셔츠를 입고있는거야? 자신있게 벗어."

제가 셔츠를 입은 채로 해변가에서 머뭇거리자, 지나가던 한 우크라이나 사람이 말했습니다.

이미 저를 제외한 주변의 남자들은 상의를 탈의한 채로 수영을 하고 있었죠.

시간이 오래 흐른 지금도 저는 그곳에서의 평온함과 결혼식 파티를 축하하는 경쾌한 음악소리가 기억에 남습니다.

저와 로탄(아제르바이잔 사람)은 그곳에서 일광욕을 즐겼고 때론 그를 따라 수영을 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수영을 잘하진 못해서 저는 그냥 그가 수영하는걸 지켜봐야했습니다.

 


the plains of Odessa
그곳의 넓은 바다만큼이나, 그곳의 평야도 광활하고 아름다웠습니다.

해변에서의 즐거웠던 시간이 끝나고 젖은 슬리퍼를 신은채로 바람을 맞으며 간식을 먹다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어갈 때가 되었기에 저는 숙소에서 옷을 갈아입고 열차를 타고 도시 외곽으로 향했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은 갈대로 가득한 들판을 파도처럼 출렁이게 만들었고, 바람사이로 드러난 갈대밭 틈새로 염소들이 머리를 드러내며 지나가는 행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염소 주변에는 말들이 한가롭게 평야를 거닐고 있었죠.

거위를 안은 소녀가 강렬한 햇빛 아래 집으로 향해 걸어가고 있었고 그 뒤로 동물들이 그녀를 따라갔습니다. 아마 곧 해가 지기에 소녀는 동물들을 집으로 데려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녀와 눈이 잠시 마주쳤지만, 저물어가는 햇빛이 너무 눈부셨기에 우리는 서로를 오랫동안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시선은 서로가 향해야 할 길로 향했죠.


The train station in Odessa, Ukraine.
우크라이나 오데사의 기차역. 

기차는 낡았지만 공간이 꽤 넓었습니다. 어쩌면 아주 오래전이라 제 기억이 왜곡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기차는 약간의 소리를 내면서 끝없이 펼쳐진 평야 위를 달렸습니다. 오데사의 시골 마을을 향해서요.

8살정도 되는 어린 소녀가 동냥을 하고자 저에게 다가왔지만, 제 옆에 있던 우크라이나 소녀가 그녀를 매서운 눈짓으로 쳐다보자 어린 소녀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웅얼거리며 지나갔습니다. 

그 아이에 대한 미안함에 머뭇거리다 결국 사라진 아이를 뒤로한 채로 어느새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내려야 했던 곳은 정차역도 존재하지 않는 들판 한가운데였습니다. 목적지도 보이지 않는 광활한 들판에 사람들은 하나 둘 내렸고 기차는 떠나갔습니다. 그들을 따라 약간을 걷고 나니 작은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곳에서 며칠을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평야 사이의 철도, 그리고 옛 소련시절 일하는 노동자들로 북적였을지도 모르는 붉게 산화된 채로 뼈대만 남은 공장들은 이곳의 과거를 상상해내기에는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동안 침묵한채로 그곳의 경치를 기억속에 담아내려했고 저와 동행한 사람은 말없이 그네를 타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우리는 그곳 갈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작은 강을 따라 계속해서 걸었고 저물어가는 햇빛에 반짝이는 강물은 소리 없이 흘러내리며 나룻배에 탄 노인을 데리고 버드나무 숲 어디론가로 향해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노인은 깔끔하게 차려 입었지만 전형적인 농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반 쯤 나룻배에 몸을 기댄 채로 그는 지난날을 회상하듯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걸어온 세월의 움직임처럼 나룻배는 그를 계속해서 천천히 우리의 걸음 속도에 맞추어 그를 싣고 흘러 내려갔습니다. 

천천히... 하지만 어느새 되돌아보면 너무 먼 곳 어딘가로 그를 데려가겠죠.




A cat I met in Odessa. In the very cold weather, the cat was quietly staring at the ground with one paw raised. This cat was still alive two years later.
오데사에서 만난 고양이.
매우 추운날씨에 그 고양이는 한발을 올린채로 가만히 땅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이 고양이는 2년후에도 살아있었습니다

겨울에 흑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이곳의 여름처럼 따뜻하고 관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겨울에는 정말 너무도 추워서 한국의 북쪽 마을보다도 더욱 춥게 느껴졌습니다. 

강렬한 바람은 내의를 2겹이나 껴입은 저를 굴복시켰고 우리는 한동안 어느 식당에서 몸을 녹여야했죠.


at the restaurant of Odessa
저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다른 나라에는 팁 문화가 있다는걸 깨달았습니다.


그런 건 미국에나 존재할 줄 알았는데 아니더군요... 

처음에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서 그냥 나왔습니다만, 나중에 우크라이나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내가 그들에게 팁을 줘야 했다고 하더군요.

나중에 두 번째 방문 때 직원에게 팁을 주었습니다. 제가 팁을 준 그 직원이 예전에 저에게 팁을 못 받은 직원이었을겁니다. 꼭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Photos of downtown Odessa city center
오데사 시내 중심

"Photos of downtown Odessa city center

Photos of downtown Odessa city center

오데사의 중심부에는 번화가도 있었고 밤에는 관광객들로 북적였습니다. 기억에 남는건, 한 클럽 입구에서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댄서가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길거리에서는 수박을 파는 젊은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한국에서의 가격보다 훨씬 저렴했고 훨씬 맛있었습니다. 거기서 먹은 푸룬과 수박의 맛은 너무 그리웠기에 나중에 저는 몰도바에서 푸룬을 거의 매일 먹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푸룬이 없어서 정말 그리웠거든요... 재배하는 사람들이 있긴 했는데 그곳만큼 맛있진 않아서 더 사먹진 않았습니다.



Victory Monument in Odessa

Shooting range sign


그곳의 사격장에는 초등학생들로 보이는 어린 학생들도 많이 있었는데 그들 중 몇명은 지금 쯤 군인이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때는 이런 사격시설에 어린 아이들이 많이 방문한다는게 정말 놀라웠는데 남자,여자 아이들이 매우 숙련된 솜씨로 사격을 해서 저 역시도 놀랐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2년동안 복무했지만, AK종류의 총을 사격해본적이 없었기에 이곳에서 한번 꼭 사용해보고 싶었습니다. 생각했던것보다 반동이 크지 않았지만, 군대에서처럼 정해진 구령과 절차 없이 주변사람들이 사격을 했었기 때문에 저는 처음에 그것을 적응하지 못해서 매우 당황해서 어쩔줄 몰라했더니 사람들이 웃던게 기억이 납니다.


The everlasting flame



제 오래된 USB의 사진들 대부분이 손상되었기 때문에 저는 겨울 사진들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곳의 겨울도 정말 아름다웠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지금 그곳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길 바랄 뿐입니다.

이곳에 있는 참전용사들을 추모하는 꺼지지 않는 불길처럼, 그들의 행복과 번영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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