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에 숨겨진 작은 나라, 몰도바 여행기

 

우크라이나 오데사의 들판

십여 년 전, 오데사행 기차에서 내린 뒤 오래된 철길을 따라 걷고 있었어요. 하늘과 땅의 경계를 이루는 듯한 광활한 밀밭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죠. 해안과 국경을 따라 불어오던 매섭고 건조한 바람과 눈은 봄의 축복을 받아, 서서히 땅속으로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한때 황량하고 메마르기만 했던 들판은 다시금, 지난해 세상을 떠난 이들의 후손들에게 번영을 가져다주고 있었어요.

푸르게 살아난 대지와 그 위에 피어난 이름 모를 야생화들은 바람에 일제히 흔들리며, 다가오는 바람의 흐름과 방향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어쩌면 바람에 나부끼는 들꽃들의 조용한 동요는, 언젠가 다가올 황혼 너머의 어떤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몰라요. 그 두려움은 아마도, 결코 말로는 표현될 수 없는 것이었을 겁니다.


우크라이나 오데사의 시골 농촌 풍경이에요

우크라이나 오데사의 평원.

끝없이 펼쳐진 이 땅을 볼 때마다, 하늘과 땅이 겹쳐진 우크라이나 국기가 마음속에 떠오르네요.


이미 가을이었어요. 인적 없는 들판에 멈춰 선 기차에서 내려, 붉게 물든 철로를 따라 걸어가고 있었고마을 사람들이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동안에도, 저는 방향을 정하지 않은 채 계속 걸었어요.

염소들이 갑자기 허리 높이까지 자란 밀밭 위로 고개를 내밀어 저를 구경했지만, 이내 흥미를 잃은 듯 다시 사라졌어요. 

거위를 품에 안은 젊은 여자는 햇빛에 눈을 가늘게 뜨고 사라진 염소들을 찾아다니고 있었어요.


조금 떨어진 강가에는 신사 모자를 쓴 노인이 배에 반쯤 기대앉아 나룻배를 젓고 있기에 버드나무가 서 있는 강둑으로 내려가 노인을 사진에 담으려 했지만, 발밑의 깊이와 경사를 가늠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버드나무에 등을 기대고 사진을 찍기로 했어요.


배를 타고 노를 젓는 노인의 모습


그 사이 노인을 태운 배는 이미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어요.

“민, 이제 가야 해.”
“어디로?”
“가족이 있는 곳으로.”

그들은 저를 기다리고 있었고, 맛있는 음식도 준비해 두었다고 했어요. 제가 좋아할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지난번에 먹었던 토마토 피클이나 생선 절임만 아니면 뭐든 괜찮아. 그런데 이 철로는 어디까지 이어져 있어?”


오데사의 기차역



“이웃 나라까지 쭉 이어져 있어. 아마 루마니아까지도 연결되어 있을지도..”

두 번째 여행의 마지막 여정이 된 그곳에서, 풍경은 겨울 바람에 실려온 은빛 눈으로 뒤덮인 차가운 땅이 고요하게 펼쳐진 모습이었어요.

한때 풍요로움 속에서 꽃피웠던 생명들은 모두 밤하늘의 별이 된 듯, 메마르고 투명한 하늘 저편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어요.

더 이상 서로를 만질 수 없게 되자, 그곳과 저를 잇던 연결고리는 영원히 끊어졌어요. 시간은 다시 돌아갈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고, 결국 모든 약속은 의미를 잃어버렸어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들꽃들이 말없이 경고했던 불행한 운명은 전쟁이라는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고, 뉴스는 그곳 오데사가 폭격을 당했다는 사실을 짧게 전했을 뿐이었어요.



기차역에서 내려다본 풍경.
몰도바의 탁 트인 하늘 아래, 끝없이 이어진 철로가 놓인 티라스폴 역은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이루고 있었어요.

몰도바는 그들의 파편이 흩어진 나라들 가운데 하나였어요. 전쟁이 시작된 이후, 많은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트란스니스트리아를 거쳐 유럽으로 향했고, 그중 일부는 몰도바에 새로운 정착지를 마련했어요.

전쟁 초기에는 그곳에 머물던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 그리고 몰도바인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모두 격동적인 변화를 마주했음이 분명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 사이의 갈등은 어쩌면 표면 아래에서 조금씩 누그러졌을지도 몰라요.

그곳에 머무르며 일상생활에 대한 정보를 찾던 중, 저는 한 리뷰에서 이미 잊힌 흔적 하나를 발견했어요.


“그들은 러시아 여권을 소지한 사람들이 이곳(건물)에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단호한 결단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예전에 제게 루마니아어를 가르쳐 주셨던 몰도바인 선생님도 당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우리는 더 이상 그들과 러시아어로 대화하지 않아. 몰도바어, 그러니까 루마니아어를 하지 못하면 그곳에서는 커피조차 주문할 수 없어.”


키시나우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건축물
몰도바의 수도 키시나우에 들어서는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굵은 글씨의 문장은,
이 도시가 건네는 상징적인 환영 인사였어요.


하지만 2024년에 들어 그러한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났어요.

제가 루마니아어보다 러시아어에 더 익숙해 걱정했지만, 사람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어요.

군인들은 입국자들의 여권을 하나씩 수거했고, 그 여권 더미에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어요.

그들은 러시아어와 몰도바어(루마니아어)를 섞어 사용하며 소통했고, 기다리는 동안에도 불편함이나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았어요.

입국 절차를 확인해 준 직원은 러시아어로 모든 절차가 완료되었다고 알려주었어요.

그곳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제가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느냐가 아니라, 왜 이곳에 왔는지를 아는 것이었어요.


내부의 장엄한 모습
키시네우 정교회 내부의 황금빛 화려함은 수세기 동안 이어져 온 영적인 예술성과 경건함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어요.

1827 Purcari
키시나우의 야시장은 음식과 불빛, 주말의 활기로 가득했고,
많은 사람들이 축제 같은 분위기의 가판대를 구경하고 있었어요.


와인 축제에서 만난 친구는 몰도바를 이렇게 설명했어요.

“외국인들이 많이 유입되면서 집값이 조금 오르고 생활비도 여러 이유로 늘었지만, 몰도바는 계속 발전하고 있어. 지금 받는 월급도 예전보다는 확실히 나아졌고.”

한때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알려졌던 몰도바는, 세련되고 깔끔한 젊은이들로 가득 차 있었어요. 마치 혼란과 고난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어요. 이곳은 다소 평범하게 느껴졌지만, 결코 시대에 뒤처진 모습은 아니었어요. 

예전에 인터넷에서 보았던 소련 시절의 자동차나 사람들의 모습은 이곳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어요.

어쩌면 제 기대가 지나치게 과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어쨌든 저는 그 시대를 직접 살아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이곳의 장점 중 하나는 저렴하면서도 품질 좋은 와인과 맥주를 즐길 수 있다는 거di. 오늘은 축제 날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사서 마셔볼 생각인데 한 잔씩 같이 마시자!”

그 친구와 함께 축제를 즐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키시나우에서 특별히 가볼 만한 곳이 있는지 물었어요.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어요.

“사실 오래 머문다고 해도 이곳 키시나우에 꼭 가봐야 할 곳이 많은 건 아니긴 해. 그래도 기차역 옆에 있는 벼룩시장은 한번 가보는 걸 추천해.”

몰도바의 가을 시내 모습이에요
쌀쌀한 날씨의 키시나우에서, 현지 주민들은 잎이 떨어진 나무 아래와 흐린 하늘 아래 작은 상점가 주변에 모여 있었어요.

열차역에는 여러 상인들이 있었어요
화려한 원단과 중고품들이 키시너우의 야외 의류 시장의 가판대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기차역 주변에는 노점 형태의 벼룩시장이 있었어요.

중고 의류부터 각종 가정용품까지 진열되어 있었는데,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마치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것처럼 더럽고 낡은 휴대폰 케이스와 충전기까지 판매되고 있었다는 점이었어요. 

몰도바 사람들은 이런 장소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았고, 어쩌면 외부인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풍경일지도 몰라요.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는 없었어. 필요한 게 있으면 연락 줘. 몰도바에서 가장 큰 대형마트 중 하나인 포트몰로 데려다 줄게. 포르트몰에는 괜찮고 저렴한 물건들이 많으니까, 위험한 곳에 갈 필요는 없어. 너가 다녀온 곳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거든.”


키시나우역 외곽의 시장
키시나우의 거친 야외 시장에서는 우뚝 솟은 고층 건물 아래, 바위투성이 길을 따라 소박한 노점들이 늘어서 있었어요.

키시나우역 외곽의 시장.., 이미 닫혀있었어서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어요
하필 간 날이 휴장...😥


키시나우 역에서 멈춰버린 기차역들과 흩날리는 옷들
키시나우 역에서 멈춰버린 기차들. 기차 위로 직물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어요.


기차역까지 이어진 거리 벼룩시장을 따라 걷다 보니, 역 너머에 전통 시장처럼 보이는 곳이 있어 한 번 들어가 보기로 했어요.

이곳에서도 옷과 생활용품을 파는 듯했는데, 비닐 덮개 아래에 수많은 옷과 신발이 쌓여 있었어요. 하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휴일이었어요. 가을이 다가오면서 날씨는 점점 쌀쌀해졌고, 따뜻하고 긴 옷이 필요한 시기였어요.

몇 안 되는 영업 중인 가게 가운데 한 곳에서 조금 낡은 흰색 티셔츠를 골랐더니, 젊은 커플이 서로 이야기를 나눈 뒤 500레이, 우리 돈으로 약 35달러 정도를 불렀어요. 가격을 흥정해 보았지만 별 소용이 없어 그대로 돌아섰어요.

이곳에서 이렇게 비싼 값에 옷을 사느니, 차라리 고향에서 겨울옷이 배송될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키시나우의 건축물
키시나우에 해가 지자, 잊혀진 건축물의 폐허와 도시의 희망적인 슬로건 위로 빛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어요.


“몰도바는 계속 발전하고 있지만, 이곳 사람들은 여전히 유럽의 다른 나라로 떠나고 싶어해. 나도 그런 꿈을 꾸고 있고.”

그는 잠시 말을 잇다가 이렇게 덧붙였어요.

“더 나은 기회를 찾는 게 더 나은 선택이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어. 그래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떠난지 오래야. 나도 한동안 독일과 프랑스에 있었어. 어쨌든 우리는 유럽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 그건 다행이기도 하지”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일할 사람들을 모집하는 광고판입니다.
키시나우의 구인 광고들은 몰도바인들에게 오스트리아에서 월 1,200유로, 이스라엘에서 2,400유로에 이르는 안정적인 해외 임금을 약속하고 있었어요.


몰도바어는 루마니아어와 거의 차이가 없어서 루마니아어라고 불러도 무방하지만, 아주 미미한 차이는 존재해요. 한국에서도 지역마다 사투리가 다르지만 큰 어려움 없이 소통할 수 있는 것처럼, 실질적인 차이는 거의 없어요.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굳이 몰도바어라고 부르기보다는 대부분 루마니아어라고 말했어요. 키시나우에 대한 애정을 담은 현수막이 걸려 있음에도, 번화한 거리 곳곳에서는 해외 취업을 권하는 광고판을 한두 개씩 쉽게 볼 수 있었어요.

오후에 특별한 일정이 없어, 얼마 전 알게 된 사격장에 들렀어요. 그곳에는 다양한 자동 소총들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이전에 총을 쏴본 적이 있나요?”

“물론이죠, 군대에 다녀왔어요”


“와우! 좋아요. 그래도 총알값과 사격장 대관료, 그리고 강사의 지도비를 모두 지불하셔야 해요. 전부 합치면 이 정도입니다.”

한 번의 사격에 35~42달러를 쓰는 건 다소 낭비처럼 느껴졌지만, AK 계열 총기를 다시 쏴볼 기회가 언제 또 있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예전에 타르코프에서 익숙하게 사용하던(?) 9mm 기관총과 AK-103을 골랐어요.😅

“발사하라는 지시가 내려지면 방아쇠를 당기세요. 순식간에 모든 탄이 발사될 거예요. 놀라거나 긴장하지 말고, 앞뒤 조준기를 잘 살펴보세요.”


키시나우의 사격장
총기 사용료 안내 (1레이 - 0.056달러)




전시되어있는 다양한 총들의 모습
키시너우의 한 총포상 내부를 살짝 엿볼 수 있습니다. 최신형 소총들이 안전한 유리 진열장 안에 전시되어 있어요!


AK 7mm계열 사격 영상
몰도바 사격장에서의 AK 소총 실탄 사격.

사격장에서 연사 사격을 해봤어요.
연사 장면이 잘린 것처럼 보이는데, 아마 프레임 속도 때문인 것 같아요.
한국군 훈련소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연사 사격을, 여기서 처음으로 성공했어요 😂



키시나우의 야경

이곳 사람들은 와인과 맥주를 무척 좋아했어요.

매일 저녁이면 사람들이 제가 묵던 아파트 입구에 모여 와인과 맥주를 따르며 활기차게 이야기를 나눴어요. 밤이 깊어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어야 비로소 한 사람씩 자리를 떠났어요.

저는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웃들은 제가 외출하거나 돌아올 때마다 와인이나 맥주를 권했어요. 거절하면 집에 못 들어오게 하기도 했고요. 물론, 다시 한 번 단호하게 거절하면 웃으며 들여보내 주긴 했어요.

“몰도바에 오셨으니 맥주와 와인을 즐기셔야죠. 매일 저희랑 같이 마셔요.”

“저희 할머니는 우크라이나 분이고, 할아버지는 러시아 분이에요. 가족 모두 러시아어(또는 우크라이나어)와 몰도바어(루마니아어)를 이해해요.”

저는 그들이 어떤 사람들과는 몰도바어로, 또 어떤 사람들과는 러시아어로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았어요. 마치 모국어처럼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그들의 모습이 부러웠어요.

“그래도 여기서는 영어가 제일 잘 통해요. 영어를 할 줄 알면 일자리도 구할 수 있어요. 와서 일하세요.”

“여기서는 러시아인이니 우크라이나인이니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요. 우리는 모두 여기서 자랐고, 모두 친구니까요.”


키시나우의 야경, 포르트 몰

이웃들은 술을 아주 좋아했지만, 그로 인해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었어요.

그들은 가끔 서로를 재미있는 별명으로 부르며 농담을 주고받았고, 서로 아주 가까이 지내다 보니 아파트 이웃들이 마치 하나의 대가족처럼 느껴졌어요.

물론 모든 아파트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제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그 아파트만큼은 분명 그랬어요.


키시나우를 벗어난 다른 도시의 시골
몰도바의 진짜 시골 풍경이 궁금해? 시간이 되면 나와 함께 가자! 

돼지농장


이웃의 안내를 받아 차로 약 한 시간 반 떨어진 그의 장인 댁을 찾았는데, 그곳은 그야말로 전원 풍경 그 자체였어요.

그들은 닭과 돼지, 젖소를 기르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고, 집 밖 그늘진 곳에는 손으로 짠 우유를 담아 두는 병들이 놓여 있었어요.

“이 집 인테리어는 내가 직접 했어. 그래서 벽에서 열이 나와! 겨울에 여기 머무는 아이들(친척들)이 춥지 않게 하려고.”

작은 방에서는 다섯, 여섯 명의 아이들이 침대에 붙은 벽에 기대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어요.

제가 한 아이에게 러시아어로 말을 걸자, 아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어른들을 바라보았어요.


“이 아이들은 아직 러시아어를 못해.”

“유치원에서 러시아어를 가르치지 않아??”

“이곳 유치원에서는 몰도바어(루마니아어)를 가르쳐. 아이들은 학교에 가면 몰도바어를 배우게 돼.”

반면, 나중에 만난 또 다른 이웃은 자기 아이가 유치원에 가면 러시아어를 배우게 될 거라고 말했어요.

“나는 우크라이나 출신이야. 학생 시절에 이곳에 와서 현지인과 결혼했지. 내 아이는 아마 러시아어를 가르치는 유치원에 다니게 될 거야.”





그곳에서 키시나우에서 만난 이웃들 중 하나인 나스타의 집에 놀러갔어요.

50유로 짜리 10평 남짓한 월세방이지만, 어린 에바가 함께 살고있는 작은 집은 마치 우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녀가 사랑하는 엄마와, 장난감들.

그리고 그녀가 먹다 남긴 간식들, 그리고 스케치북.

마치 제가 어렸을 때 듣던 아빠와 크레파스처럼, 곳곳에는 그녀의 그림들이 춤을 추는 것처럼 그려져 있었습니다.


거실의 불이 꺼지고 나스타가 조명을 켜자 다양한 색채의 별빛들이 처럼 집안을 화려하게 수놓았고

에바는 춤을 추며 그 별빛들을 잡기 위해 손을 뻗고 있었습니다.


작고 오래된 아파트였지만, 그곳에는 에바가 필요한 모든 것들이 있었죠.

사랑, 그리고 어머니의 따뜻한 온기. 그리고 그녀의 장난감들.


에바의 그녀의 춤처럼

나스타의 미소처럼

행복은 어쩌면 너무 멀리 있는 게 아닌,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밤에는 아파트의 입구 앞에 모여 맥주와 수제와인을 잔뜩 취할때까지 마시곤 했고

저를 쉽게 아파트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았지만(나갈때,들어갈때,마주칠때마다 맥주 한잔씩 마셔야함) 

그곳 사람들은, 헌신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침이 되면 그들은 일찍 모여서  몸을 녹이곤 일하러 떠났고 쉬는 날을 제외하곤  단 하루도 불평하며 쉬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들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고, 그들이 새롭게 만든 집들을 보여주었고 주말이 되면 그들이 보여주고 싶은 곳으로 저를 데려가곤 했죠.






키시나우의 버스정류장
키시나우 버스 터미널이었어요. 이곳에서는 약 3.50~4.20달러 정도면 트란스니스트리아로 가는 미니버스를 탈 수 있었어요.


“오데사(몰도바와 국경을 접한 우크라이나 도시)로 가시나요? 이쪽으로 오세요.”


“아니요, 전쟁이 끝날 때까지는 갈 수 없어요. 예전에 두 번 가본 적은 있어요. 티라스폴(트란스니스트리아의 수도)로 가는 버스는 어디에 있나요?”


“방금 출발했어요. 먼저 매표소에 가서 티켓을 사신 뒤, 저기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가시면 돼요.”


트란스니스트리아로 향하는 버스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약 10분 정도 기다리자, 티라스폴행 버스가 도착했어요.

운전기사는 제 쇼핑백 두 개와 배낭을 보더니 얼굴을 찌푸렸어요.

“이 작은 차에 당신 짐을 싣고 나면 다른 사람들 짐은 어떻게 싣으라는 겁니까? 도대체 이렇게 많은 짐을 가지고 뭘 하려는 거예요?”


“꽤 오랫동안 머물 계획이에요.”


“그럼 50레이를 따로 더 주세요.”

“좋아요.”

운전기사는 돈을 받은 뒤 곧바로 미소를 지었고, 제 짐을 모두 미니버스의 짐칸에 실어 주었어요.


트란스니스트리아 입국증


10월 둘째 주, 날씨가 건조해지고 제법 쌀쌀해질 무렵 저는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미승인 국가, 트란스니스트리아로 향했어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아직은 낯선 땅이었어요.


추가 정보 및 주의 사항

  • 유심 카드
    몰도바에서는 약 3~10달러 정도에 유심 카드를 구입해 사용할 수 있었어요. 가격은 체류 기간에 따라 달라졌어요. 버스 터미널 옆 작은 가게에서도 구입과 개통이 가능하지만, 도움이 필요하다면 터미널 근처 휴대폰 매장이나 편의점을 이용하는 편이 좋아요.

  • 물가
    전반적인 생활비는 저렴한 편이었지만, 수입품은 상대적으로 비싸게 느껴졌어요. 충전기를 분실해 현지에서 4구 충전기를 샀는데, 한국보다 오히려 더 비쌌어요.

  • 식재료
    식당에서는 소고기를 판매하지만, 일반 정육점에서 소고기를 취급하는 곳은 많지 않았어요. 저는 네 곳의 시장을 돌아다닌 끝에야 소고기를 파는 가게를 찾을 수 있었어요.

  • 우크라이나 이동
    이곳에서 우크라이나 오데사행 버스표를 구매할 수는 있지만, 2024년 기준으로 대부분의 외국인은 입국이 어려울 것으로 보여요.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전쟁 중이에요.

  • 음식
    일본 음식점과 한국 음식점도 있었지만, 한국 음식은 정통적인 맛과는 거리가 있었어요. 다만 다른 나라 음식을 파는 식당들은 꽤 있었고, 전반적인 음식의 질은 괜찮은 편이었어요.

  • 교통
    교통비는 상당히 저렴했어요. 키시나우 시내 대부분 지역은 택시로 5~8달러 정도면 이동할 수 있었어요. 다만 버스 정류장 주변에서 대기하는 택시들은 종종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가 있어 주의가 필요했어요. 저는 Bolt(볼트) 택시 앱을 설치해 사용했어요.

  • 생활비 참고
    몰도바의 생활비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아래 링크를 참고하면 도움이 돼요.
    (몰도바 생활 정보)영문이라 아직 없음.



댓글